인테그랄 히스토리아
Integral His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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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의 개관전 인테그랄 히스토리아는 한국(남한)과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자체적인 현대미술신을 확보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연대를 진행한다. ‘integral’은 대표적으로 수학에서 ‘적분의’, ‘통합된’이라는 뜻 외에도 ‘필수적인’, ‘완전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historia’는 라틴어로 ‘역사’를 뜻한다. 따라서, 전시의 제목 ‘인테그랄 히스토리아’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두 국가의 역사를 겹쳐보고 통합해본다는 의미를 지니며, 한편으로는 ‘완전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반어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한반도의 남쪽을 구성하고 있는 남한은 북반구, 중위도(위도 33°와 39°N 사이, 경도 124°와 130°E 사이)에 위치해 있다. 남한의 총 면적은 100,032 평방 킬로미터이며, 인구수 약 5,162만 명으로 구성되어있다. 선진국에 속하며 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기준 세계 10위이고,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와 G20(Group of 20)에 가입되어있다.

한편,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5°, 남위 10°에 걸친 약 18,200 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서 5번째로 가장 넓은 영토(1,904,569 평방 킬로미터)를 지닌 세계 최대 규모의 섬나라이며, 인구수는 전 세계 4위로 2억 6,700 만 명을 넘어섰다. 경제 규모는 GDP 기준 세계 16위로 지역 강대국(regional power)이며 중간 강국(middle power)으로 간주된다. WTO, UN, G20 등에 가입되어 있으며, 비동맹 운동(Non-Aligned Movement),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아시아 정상 회담(East Asia Summit) 및 이슬람 협력 기구(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 등의 창립 멤버다.

과거 피식민지였던 두 국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하고, 이후 권위주의 정부를 겪고 직선제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유사한 역사의 과정을 겪었다. 한국은 쇄국정책을 펼치다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직후인 1910년 일본에 병합되었고 이후 1945년에 이르기까지 35년간 일제강점기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립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48년, 냉전 체제 최전방이라는 지정학적 이유를 비롯, 미국과 소련의 합의에 따라 38선을 경계로 분단이 됐다. 1950년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한국전쟁을 치렀으며, 휴전 이후 제1세계 진영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1960년, 18년간 이어져 오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독재가 4·19혁명으로 끝나고,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는 32년간의 군부 독재를 지나는 과정에서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직선제를 이룩했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향료 무역의 독점권을 노린 네덜란드에 의해 17세기부터 식민지배체제에 있다가 네덜란드와 영국의 영토분쟁으로 잠시 영국 지배를 받게 된다. 1824년의 조약으로 다시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게 되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2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군 지배하에 있었고 1945년 대전이 끝나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1949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연합 아래 독립국가로 발족, 1956년에는 네덜란드와의 관계를 끊고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1957년부터 1998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독재정치가 이루어졌고 1998년에 민주화되었으며 1998년 정상적인 의미의 국가원수선거를 이룩하고, 이후에도 군부의 입김이 정치권에 잔존했으나, 2014년 최초의 직선제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식민 지배와 민족 통합, 군부 독재라는 연쇄고리로 얽혀있는 복잡다단한 역사 끝에 표현의 자유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쟁취해낸 만큼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현대 미술은 사회의 면면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한국의 경우, 상업 미술신이 상대적으로 크게 발달하진 않았지만 강력한 국가적 지원아래 각 지방마다 미술관, 비엔날레 등 인프라와 기금제도를 마련하면서 많은 예술인들을 키워내고 있고, 특히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많은 대학들이 한국 예술인 창작 산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제한된 인프라와 기금제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술가와 예술가 커뮤니티가 국내외로, 수도인 자카르타, 족자카르타, 반둥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곳곳에 산재한 다양한 예술 커뮤니티의 힘이며, 자카르타 비엔날레와 (야야산) 족자카르타 비엔날레가 양대 산맥으로 그 중심축을 잡아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업을 통해 역사성과 정체성을 묻는 4인의 작가를 소개한다. 2인의 한국 작가와 2인의 인도네시아 작가가 바라보는 두 국가의 역사를 교차해보고 때로는 국제적인 관점에서 조망해봄으로써, 역사의 같음과 다름, 반복과 단절을 확인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FX 하르소노와 최원준은 각각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역사를 미시적인 관점에서 관찰한다. FX 하르소노는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거대 서사 아래 가려져 왔던 소수자인 중국인에 대한 약탈과 학살에 주목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뜨는 공동묘지 탁본 퍼포먼스를 통해 죽어간 집단이 아닌 개인들을 기억한다. 미시 서사에 집중하는 작업은 거대 서사에 대한 인지 역시 확장하며, 이를 제시된 역사에서 벗어나 다시 바라보고 해석하게 한다. 스스로 화교인 작가의 행위는 과거의 문제를 현재의 문제로 환기하면서, 여전히 차별이 이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한다.

최원준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근현대사를 면밀히 연구하며 재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특히, 공동화된 수도권 주변의 군사시설과 뉴타운 개발의 문제를 다룬 ‘언더쿨드’, ‘타운하우스’ 등의 연작을 통해 작가는 과거의 냉전 이데올로기가 지정학적 문제를 벗어나 부동산 경제논리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가시화시켜왔다. 이렇게 작가가 과거와 현재의 공존지를 기록해낸 다큐멘터리적 작업은 변해가는 장소와 사람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는 과거 흥행신화를 이룩하던 기지촌이었으나 주한 미군의 평택 이전과 도시개발 사이에 끼인 보산동의 역사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과거의 냉전 이데올로기 기물이 현존하는 경기 북부와 보산동의 공간들을 투어하며 장소성의 변화를 경험해보는 Strange Visitors를 선보인다. 또한, 전시장에는 '타운하우스' 연작 중 과거 미군 부대 주변의 클럽 사진 일부와 신상옥 감독의 영화 지옥화의 스틸을 병치함으로써, 미군 기지촌의 정체성을 현실과 영화를 통해 선보인다.

한편, 엘리야 누르비스타와 김실비는 음식문화와 원형이라는 자신만의 거울을 이용해 거시 서사와 미시 서사를 오가며 세상을 비춰오고 있다. 음식문화를 통해 세상에 가리워진 면면을 재조명해 온 누르비스타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역사와 관계사를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연대기로 작성한다. 여기에 공산주의를 신봉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던 여성 정치범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음식을 섭취하고 살았는지 회고하는 영상 COOKING IN PRESSURE와 제국주의 시대 이전과 이후 땅을 살아가는 이의 마음을 선언문적으로 담아낸 영상WE DREAMT ABOUT REFORM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역사의 여러 층위를 켜켜이 드러내 펼쳐 보인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바로미터로 존재하는 남한과 북한의 관계 역시 그의 연대기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여성 정치범의 모습은 오랫동안 레드 콤플렉스에 젖어있던 한국의 정치범들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인도네시아 땅에서 개혁을 꿈꾼 이의 근본적인 마음 역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공감을 전한다.

김실비의 신작 하루살이 응접실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에서 발견된, 약 4만 5천 500년 전에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로부터 시작한다. 술라웨시, 라스코, 알타미라 등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동굴벽화들은 성공적인 사냥감 획득을 기원하는 유사한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으며, 따라서 공동 제의라는 ‘원형(본능과 함께 유전적으로 갖추어지며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보편적 상징)’으로서 예술의 원초적인 역할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동굴벽화가에게 공감한 영상을 선보이고, 기원의 연상 작용을 통해 형태적·기능적으로 유사한 디지털 프린트, 생물학적·신화적 모형, 향, 영상 등을 한데 모은다. 기원의 손과 발, 불수감, 람부탄, 진실의 입, 몸의 동굴인 창자 등의 연상 이미지들이 서로 병치되고, 화룡점정으로 피어나는 향은 다시 관람객의 담지하고 있을 기원의 원형을 자극한다. 작가는 이 이미지와 형태를 무심한 듯, 두 레디메이드 차탁에 배치하는데, 차탁은 전시장에서 수납이라는 기존의 쓰임새 외에도 작업의 일부로서의 역할을 새롭게 부여받는다. 작가는 원형을 통해 한국과 인도네시아, 혹은 그 너머의 관계들을 잇고, 예술의 역할에 대해 다시 묻는다.

각 작가들의 작업에서 관람객은 스스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교차해볼 수 있다. 두 국가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같음과 다름을 병치해보며, 미래의 연대를 이야기해 보는 자리를 다시 서로 마련한다.

글: 문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