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grandm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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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공적인 기획의도

요즈음의 한국은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라고 보아도 무색할 정도로 타인을 대상화하고 일반화하여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근거리에서 직접적으로 경험을 하자면, 우리는 모두 ‘인간’과 ‘인간’이라는 ‘함께의 관계’ 속에 있다. 전시 우리, 할머니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할머니들을 전시장으로 초대함으로써 남녀-세대 간의 분리를 뛰어넘어 함께의 관계를 환기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자리를 마련코자 한다.

최근 매스컴에서 명명하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에게 할머니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맞벌이가 많은 X세대를 부모로 둔 MZ세대는 할머니 손에 자란 경우가 많아 할머니는 이들 세대에 친숙하고, 할 말은 당당히 하면서 다양한 의견에 포용력이 높은 MZ세대는 할머니를 똑 닮았다. 이에 할머니는 새로운 세대를 양육하고 이끈 선지자이자 페르소나로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전시는 할머니의 개인사와 할머니가 겪은 시대사를 교차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할머니라는 인물들을 다각적으로 조명하여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추상적인 의미로서 할머니는 자식들과 손주들을 돌보며 따뜻하고 푸근함을 선사하는, 가정을 위해 헌신한 포용력과 희생의 아이콘으로 존재한다. 할머니 댁에 다녀온 아이들이 포동포동하게 살이 붙어오거나 부모와 싸운 후 할머니 댁으로 도망가는 재현(representation)은 만국 공통으로 존재한다. 한편, 할머니는 제도를 수호하는 완고한 여성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유교 – 일제강점기 – 냉전 이데올로기 – 빠른 근대화 - 신자유주의라는 격변의 시대를 거쳐 온 한국에서 세대 간의 차이는 사뭇 분명하고, 여전히 할머니들은 자신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구시대적 가치를 수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할머니이든, 그 삶을 들여다보면 격변의 시대를 겪어온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이거나 언니였고, 엄마였고, 아내였고, 그 스스로였을 아주 단단한 여성들이다. 그 주름살에는 인자함이나 완고함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기록자로서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는 셈이다. 해서 우리네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다시금 마련하는 일은, 과거(현재)를 통해 현재(과거)를 재해석하게 하고 새로운 연대를 마련할 것이다.

한편, 할머니는 많은 부분 공적인 역사의 기록에서 지워지거나 누락되어왔다. 혹은 가치 판단이 부여되어 왜곡·축소된 채 고정된 이미지로 반복 재현되어왔다.[1] 3.1 운동부터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제주 4.3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는 지배 혹은 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운동이 펼쳐졌고, 그 행위의 주체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남성의 이름만이 남아 함께 싸우며 죽어간 여성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더불어 전쟁이나 독재가 남긴 폐허와 남성의 부재 속에서 생계를 부양하고 경제활동을 주도한 수많은 여성의 이름과 재현 역시 가족이라는 체제 아래 누락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는 여성들을 특정한 맥락에 위치시키고, 이외의 내러티브를 제거함으로써 집단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만을 수행토록 제한했지만, 그러한 감정까지를 포함해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여성들은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바로 우리 옆에 남았다.

이번 전시는 우리 할머니들의 삶을 다시 소환한다. 그들이 어떻게 시대를 기억하고 기록해왔는지를 살피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할머니들의 과거, 현재를 잇는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그들의 개인사와 역사를 교차시킴으로써, 가려져 있던 역사를 드러내고 다각화한다.

전시는 크게 ‘할머니의 일기’, ‘시대의 할머니’, ‘할머니 되기’ 총 세 노드(node)[2]로 구성되고, 이는 견고한 섹션을 구성한다기보다 개념적·공간적으로 서로 교차한다. ‘할머니의 일기’에서 강서경, 모스타파 사이피 라흐무니, 오석근은 보통 할머니들의 다양한 면면을 담아낸다. 강서경은 그랜드마더 타워 #1, 둥근 계단, 좁은 초원 #19-08을 마치 할머니와 손주가 대화하는 듯한 풍경으로 구성하고, 라흐무니는 Persistence에서 할머니의 기침 소리를 녹음해 할머니의 존재를 기억한다. 오석근은 마주보기에서 할머니와 손주가 지속해서 마주하는 대화의 시간을 마련한다. 해서 할머니의 일기는 할머니와 손주가 함께 쓰는 공동의 일기를 지향한다.

‘시대의 할머니’에서 윤석남, 조이스 빌란드, 정은영, 차진현은 각 시대상 속의 할머니들이 겪었던 상황들을 시대사와 개인사적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지워진 역사를 기반으로 할머니들의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윤석남의 Women of Resistance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홀로, 가족들과, 사회와 함께 등장하면서, 뭉뚱그려지는 역사 속에 잊혀 온 여성들의 개인사와 정체성을 드러낸다. 여성 노동운동을 기록한 빌란드는 Solidarity에서, 구체적인 초상을 등장시키지 않는 방식을 통해 주체의 자리를 관람객에게 양보한다. 화면의 중간에 지속해서 자리하는 ‘연대’라는 문구는 전시의 지향점과 만난다. 정은영은 틀린 색인에서 여성국극에 관한 1차 자료(raw materials)와 자신이 제작한 창작물들을 함께 배열하는데, 구성원들의 회고와 재연을 통해 개인사와 시대사가 교차한다. 한국 위안부 여성들을 기록한 차진현의 108인의 초상 시리즈는 어렵기 때문에 피하고 있던 역사를 눈앞에 재현하고, 기억게 한다. ‘시대의 할머니’에서 선보이는 여성들은 활약 당시 할머니가 아니었지만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이들이 견뎌온 근현대사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관람객들은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과거로 소환하고, 시대의 할머니와 자신의 할머니를, 혹은 자신과 할머니를 함께 놓아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되기’에서 트흘렛 펄 와이스텁과 사만다 니는 할머니의 정체성을 가로질러 보편 개념의 할머니에 균열을 가하고, 확장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와이스텁은 하와이 - 불가피한 탈출 - 서울에서 환상적 휴가와 신체의 노화를 메타포로 삼아 고령 세대와 젊은 세대, 과거와 미래 사이를 연결한다. 니는 비주얼 컬처/주크박스 시네마에서 자신의 어머니, 할머니, 그들의 친구, 퀴어 커뮤니티의 고령자들과 함께 작업하며 트랜스-포괄적인 레즈비언 공간에 대한 퀴어 판타지 역사를 상상한다. 두 작가는 무엇이 할머니를 규정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정체성을 각자에게 오롯이 돌려준다.

노화란 막을 수 없고, 따라서 세대는 존재한다. 누구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었)고, 또 누구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전시는 다양한 세대 사이를 깁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연대를 상상한다. 누군가 마음속에 우리 할머니를 떠올린다면, 전시는 그 소명을 다한 셈이다.

글: 문선아

[1] 주디스 버틀러, 『위태로운 삶-애도의 힘과 폭력』, Verso, 2004. 참조
[2] 네트워크에서 연결 포인트 혹은 데이터 전송의 종점 혹은 재분배점